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문단 편집) == 제작비와 흥행 == 당초 이 작품은 2000년 기획 당시만 해도 제작비가 30억대 수준으로 책정되었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2001년 2월 56억원까지 늘어났고, 촬영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제작비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촬영을 마친 2002년 4월에는 순수제작비만 92억원이 투입되었다.(마케팅 비용 포함 110억원). 결국 제작기간 4년이 걸리게 된다. 감독과 제작사의 불화와 장선우 감독의 잠적 등 개봉이 여러차례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2002년 9월 개봉되었고, "400만을 넘겨서 제작비는 건질 것"(동아일보와의 인터뷰)이라는 감독의 호언장담은 첫주 전국 7만의 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110억에서 단 5억만을 건진 이 영화는 결국 2002년 한 해 <아 유 레디>, <예스터데이>에 이어 충무로의 최대 재앙이 되었다. 그리고 본작에 100억에 이르는 거액이 투입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상황 때문이었다. [[쉬리]] 이후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과 관객수 모두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IT버블]] 붕괴까지 발생하자 한국에는 길잃은 자본이 상당히 많았다. 이러한 자본들은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주식이나 부동산 대신 단기적인 성과를 낼 투자처를 찾고 있었다. 이러한 잉여 자본의 상당수는 영화계를 택했고, 덕분에 한국 영화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친구(영화)|친구]], [[공동경비구역 JSA]],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두사부일체]], [[조폭마누라]], [[주유소 습격사건]]같은 흥행작이 단기간에 쏟아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CJ는 [[타이타닉]] 덕에 영화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당시에는 생소하던 멀티플렉스, 즉 복합 영화관까지 지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부 대형극장을 제외하면 영화관들의 관수가 단관 혹은 2개관 정도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한 영화관에서 많은 영화를 상영할수 없어서 1-2개의 영화만 상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심지어 유명영화 몇개로 몇개월 장사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서울의 유명 영화관이 어떤 영화를 택하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피카디리나 단성사 같은 영화관에 자신의 영화가 걸리는 꿈을 꾸던 감독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계의 무분별한 팽창이 본작을 낳았다. 쌓여만 가는 눈먼 영화 자본 중 100억이 TTL 광고로 주가가 최고조에 달한 [[임은경]], 검증된 흥행 감독이었던 장선우에게 갑자기 몰려든 것이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킨 [[쉬리(영화)|쉬리]]가 30억, 크게 망했다는 [[퇴마록(영화)|퇴마록]]이 40억 정도를 쓴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장선우는 상업적인 의미의 흥행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대로 영화를 찍어도 생각보다는 돈이 되는 의미의 흥행을 이어가던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촬영은 3년이나 걸렸고, 도중에 감독이 주기적으로 잠적했다. 사라진 제작비의 대부분은 늘어지는 촬영 기간 동안 교체된 스태프들의 인건비에 쓰였다.[* 영화를 부산에서 촬영한 탓에 제작 기간이 계속 늘어나자 스태프들의 현지 체재비도 계속 증가하여 제작비 증가에 일조했다.] 해피 SF에 의하면 [[홍콩]]에서 데려온 액션팀이 촬영 기간이 길어지자 돌아가버렸고, 새로 데려온 액션팀의 스타일이 이전 팀과는 다른 스타일이라서 영화를 뜯어 고치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처음 찍은 필름이 훼손되어 남은 제작비로 다시 찍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상식을 넘는 참패를 납득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김치 전사|만든 썰인 듯하다]].] 아마 장선우 감독은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하였으나, 물밀듯이 들어오던 자본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자 부담을 느낀 듯하다. 감독이 방황하는 사이에 정체성을 잃은 100억짜리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결국 극장 개봉 2주 만에 전국 14만의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손익분기점은 300만 명. 당시 기준 대박영화의 기준이 전국 100만을 벌어들이는 거였다고 생각한다면, 장선우 감독으로서는 터무니없는 꿈이었음을 알 수 있다. [[DVD]]는 개봉 일주일 만에 나왔다고 한다. 본작이 개봉한 해에 한국 영화계는 [[http://ask.nate.com/qna/view.html?n=3034035|500억의 적자]]를 봤는데, 약 20%가 본작으로 인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